순밍,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ㅡ모멘 님의 굿 커플링 굿 키워드 감사해용 ♡
뜨겁게 김이 나던 커피가 식어버렸다. 민규는 계산 뒤 받아 온 영수증을 잘게 찢어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흩날렸다. 조각을 맞출 시도조차 내기 무서울 정도로 수십 조각으로 찢겨진 영수증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휴대 전화의 홀드를 풀어 시간을 인지했다. 네 시 삼십 분. 약속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나가고 있는 시각이었다. 민규는 슬슬 편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관자놀이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리고 다시 휴대 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다이얼에 외운 지 오래인 전화번호 11자를 눌렀다가 차마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명백한 그의 부재였다.
순영, 권순영.
민규는 조그맣게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한 달 전의 우리를 떠올렸다. 달(月)만 달랐을 뿐이지, 장소, 테이블 위에 있는 음료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그때 순영은 어떤 말을 뱉었었지. 사실 민규는 그날을 머릿속에서 수백 번은 되감기했을 것이다. 순영의 말을 줄줄 외울 지경이었으니까.
이제 너 감당하기 힘들다. 버겁고, 지쳐.
분명했던 건 둘의 시선이 정확히 마주했다는 것이다. 순영의 표정이 어땠냐면,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고 해야 하나. 민규는 그 말을 뱉는 순영을 똑바로 마주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카페에 민규의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손님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은 민규가 너무 웃어 눈물까지 맺혀 버린 눈꼬리를 손등으로 훔쳤다. 뭐라고, 형?
그냥, 그때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민규가 아직도 품고 있는 의문은 연애에서 자신을 감당했다는 단어를 선택하고 내뱉은 순영의 문장이었다. 어감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방인 연애에서 순전히 순영만 일방적이었다는 말로 해석됐다. 내가 그에게 어떤 존재였던가. 그저 감당하고, 감당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였던가. 나의 존재가 그에게 어떻게 와닿았길래.
자리에서 일어난 민규는 차갑게 식은 음료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카운터에 도로 반납했다.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직원에게 안녕히 계세요, 따위의 형식적인 인사를 겨우 건넸다. 해가 떠 있을 때 출입한 카페였는데 마주한 밖은 깜깜했다. 민규의 마음처럼.
그러니까 민규는, 아직 그를 놓지 못한 채 여전히 혼자만의 약속을 잡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서성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매번 같은 결과임을 알면서도, 뻔히 다 알면서도. 기어코 헛웃음이 터졌다. 입술을 맞댈 때 감촉이 생경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민규는 또 웃어제꼈다. 허리를 접어 가며 웃다가 울었다. 그것도 엉엉.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달래 줄 누군가도, 안아 줄 누군가도.
원민, 물고기 ㅡ노닝 님 역시 굿 커플링 굿 키워드 감사해용 ♡
눈을 깜빡였다.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원치 않은 결과에 행동을 반복했다. 여전히 눈앞은 흐렸다. 기어코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원우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뿌옇게 들어차는 세상보다 까만 어둠이 백 번은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삶의 의지를 잃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대로 취침하기 직전에 익숙한 도어록 해제 소리가 울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마찬가지로 익숙한 인물이 들어섰다. 원우는 훅 끼쳐 오는 체취로 그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김민규. 사실 그 말고 이 오피스텔에 출입할 인물이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밥 먹었어?
그는 한결같다. 말라빠진 원우의 끼니를 제일 먼저 챙긴다. 바스락거리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여러 밀폐 용기를 꺼내는 모습마저 꽤 익숙하다. 냉장고를 연 민규의 한숨 소리가 원우의 귓속에 파고든다. 일주일 전, 여러 개의 반찬거리를 가지고 와 냉장고를 반은 채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다. 민규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 얼얼할 지경이었다. 하루에 두 끼라도 먹으라는 자신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원우가 답답해서, 더욱 말라가는 몸뚱아리가 짜증나서, 마주보면 힘없이 웃는 꼴은 외면하지를 못하겠어서. 복합적인 이유가 민규를 괴롭혔다.
혹시 아사하고 싶은 건 아니지.
던진 이는 진담이었는데 받아들이는 이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웃었다. 민규의 한쪽 눈썹이 꿈틀댔다. 이제 챙겨 주는 거 못 해, 형. 묵묵히 냉장고를 채우며 뱉은 말이었다. 원우는 그 말에 상체를 일으켜 소파에 몸을 기댔다. 또 왜.
나 아빠 집으로 가. 삼 년은 있다 올 거래.
원우는 다시 한 번 눈을 깜빡였다. 김민규의 아빠 집이, 그러니까, 뉴질랜드에 거기 말하는 게 맞나. 민규는 독심술사도 아니면서 원우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 뉴질랜드 간다고, 일주일 뒤에. 당차게 확인 사살을 해 오는 민규를 바라보며 원우는 또 웃었다. 어떤 의미였는지는 자신도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이거 키워.
또 다른 종이백에서 민규가 꺼내든 것은 좁아터진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서 유영하고 있는 흰 금붕어였다. 원우의 시선이 민규에게서 금붕어로 옮겨갔다. 이게 무슨.
보면서 내 생각 하라고. 어차피 공항에도 안 나올 거잖아.
키워?
어, 죽이지 말고 다시 나 만날 때까지 잘 키워.
민규는 금붕어에 자신을 투영하라며 종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던 1.25L 페트병을 가위로 1/3 정도 잘라냈다. 비닐봉지마저 잘라낸 민규는 금붕어를 그곳에 옮겨 담았다. 아무리 작은 한 마리였지만 그곳은 헤엄치기에 너무나 비좁았다. 좁은 자신의 세상에 금붕어가 제자리를 빙빙 돌기만 반복했다. 그것을 보는 민규의 표정은 애처롭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소파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있는 원우 위로 몸을 겹쳐 앉은 건 순식간이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물렸다. 건조하던 원우의 입술은 덕분에 수분을 되찾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금붕어를 옮겨 담을 어항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민규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질척하게 엮이는 혀가 오늘따라 달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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