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으로 들어서니 반갑지 않은 어둑함이 온몸을 감싼다. 늘 자리를 지키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스위치를 눌러 공간을 밝히는 대신 목적지를 침실로 두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이 정도면 익숙해진 레퍼토리에 가벼운 실소가 터진다. 그러나 오늘은 비교적 색다른 광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넉넉한 퀸 사이즈의 베드 위 놓인 붉은 장미꽃은 새하얀 시트와 너무도 대조된다. 방에 딸린 욕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더운 공기를 동반한 그가 가운만 걸친 채 걸어나온다.
- 일찍 왔네요, 아저씨.
까만 앞머리칼을 간신히 붙잡고 있던 물방울이 하릴없이 바닥으로 수직낙하한다. 툭, 툭, 투욱. 직접적으로 자극되는 청각은 없지만 시각적인 효과가 모순되게 귓가를 때렸다. 며칠 전 새로 들인 체리블러썸의 바디워시 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끝없이 맴돈다. 단시간에 가까워진 그와의 거리에 아직까지 손에 들고 있던 오피스백을 그대로 놓쳐 버렸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그것을 바라보던 그가 희미하게 웃는다.
- 저 이제 다 컸잖아요.
아득히도 먼곳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꺼내 천천히 되짚어나간다. 그때의 그는 나보다 한 뼘 정도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없이 순수하며 맑던 눈동자가 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뻑뻑해져 오는 눈을 비비려 한 손으로 안경을 벗어 탁상에 올려놓았다. 변한 게 있다면 그는 거쳐야 할 일정한 단계를 무시한 채 어마한 속도로 대담하고, 당돌해졌다는 것이다. 목을 옥죄던 블랙 타이가 그에 의해 오피스백 옆에 힘없이 떨어진다. 나름 진지한 표정을 띤 그 때문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내가 이런 걸 가르쳤었나.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 때, 그가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푸르는 것으로 귀여운 반항을 지속한다. 보다 여유로워진 건 내 쪽이었다.
- 어디 한번 더 해 봐.
자꾸 엇나가는 손을 맞잡을까, 고민했던 찰나를 후회할 정도로 그는 평정을 되찾아나가고 있었다. 기어코 드러난 맨살에 피부가 맞닿는다. 어린아이처럼 목에 양팔을 두른 그가 귓가 가까이 속삭였다.
- 저를 범해 주세요.
그는 스무 살, 더 이상 미성년자 신분이 아니었다. 그간 갖은 도발에 수천 번 넘게 새긴 글자가 참을 인 (忍) 이었는데, 되새길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아 그의 가운 깃을 붙들어 탈의시켰다. 맨몸을 쓰다듬자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음성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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