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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원민] 머저리들

 형은 내 방에 들어올 때면 항상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했다. 집에 단 둘이 있어도 그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습관 비슷한 거였다. 침대에 드러누운 전원우를 힐끔 보고 교복 타이를 벗어 아무렇게나 옷장 위에 올려두었다. 그사이에 바닥에 내려놓았던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가득한 책가방이 기어코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좌우로 쉽게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가방 어깨끈을 붙잡고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뒤 지퍼를 열었다. 영어, 영어. 찾아야 할 과목을 되뇌며 한 권씩 표지를 확인하는 사이 꽤 잠긴 목소리가 귓가를 뚫는다.



 쌩 까네.



 아, 찾았다. 책 한 권을 빼내도 여전히 무거운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꽤 깔끔한 책상 위에 문제집을 펼쳤다. 챕터 4가 몇 페이지더라. 목차 부분에서 재빠르게 눈이 굴러간다. 



 시위해, 민규?



 차라리 숙제인 영어 듣기를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아 널브러져 있던 흰색 이어폰을 집어 양쪽 귀에 꽂았다. PMP에 연결한 뒤 스크린을 몇 번 터치하니 금세 소리가 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편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쥔 샤프를 떨어뜨린 것도 한순간이었다.



 부모님 여행 가셨잖아.

 .......

 쓸데없는 짓을 해, 왜.



 가벼운 웃음이 터졌고, 전원우가 내 오른쪽 귀에서 빼낸 이어폰을 손에 들고 빙빙 돌렸다. 보란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눈이 마주치자 전원우가 표정을 굳히고 쥐고 있던 이어폰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반대쪽마저 완전하게 귀에서 빠져 버린 이어폰을 바닥에 내던진 전원우가 내 턱을 힘 있게 붙잡았다. 



 도망갈 곳 없는데.

 형.

 하자, 섹스.



 교복 단추를 풀러내는 능숙한 손길을 바라만 보고 있다 학교에서 외운 영어 단어를 떠올렸다.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때울 필요는 없었다. 얌전히 있자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포개지는 입술이 오늘따라 뜨겁다.





***




 엄마한텐 비밀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회색 쓰레기통을 타깃으로 삼은 전원우가 들고 있던 콘돔 껍질을 휙 던지자 그대로 한가운데에 골인한다. 침대 옆 탁상 위에 놓인 곽티슈 서너 장을 뽑아 이불에 묻은 정액을 닦아냈다. 뒤처리는 항상 내 몫이지. 짜증 나, 씨발. 이를 바득 갈며 둥그렇게 구긴 휴지 뭉치를 전원우처럼 쓰레기통에 넣으려 던졌지만 반도 못 가 공중에서 떨어지고 만다. 일어나 바지를 입느라 면전에서 목격한 전원우가 소리내 웃었다. 



 쪼개냐?



 어. 킥킥대는 목소리가 장난스럽다. 그리고 익숙하게 옷장 네 번째 서랍을 열더니 구석에 처박혀 있던 담뱃갑을 꺼내들어 한 개비를 입에 문다. 입고 있던 검정색 추리닝 바지의 주머니 안에서는 모텔 로고와 전화번호가 적힌 빨간색 싸구려 라이터가 들려나온다. 부싯돌이 두어 번 갈리는 소리와 함께 금방 빨갛게 불이 붙은 담배 끝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코끝으로 연기가 들어오자 기침이 나오는 꼴을 바라보는 전원우가 검지와 중지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는 혀를 찼다.



 아직도 적응 안 돼?

 어, 개새끼야. 나가서 피우라니까.



 좆같게도 나에게 처음 담배를 가르친 건 전원우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그때는 둘 다 미성년자 신분이었지만 어떻게 담배와 라이터를 구해 온 전원우는 무작정 내 입에 담배를 물렸었다. 잇새로 어정쩡하게 물고 있는 폼을 보고 고개까지 젖혀 가며 웃던 전원우는 이내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빨아들여 봐. 괜찮아, 그대로 쭉. 병신처럼 한번에 많은 양을 흡입해 목에 연기가 걸린 나는 지금처럼 기침이 터졌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차오른 나를 보고 전원우가 담배를 뺏어 자기 입에 물었다. 길게 빨아들인 전원우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고, 남은 한 손으로는 내 턱을 부여잡고 입술을 맞부딪쳤다. 무방비 상태에서 열린 틈 사이로 담배 연기를 훅 불어 넣는 전원우 때문에 급격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누가 머리를 몇 대 갈긴 것만 같았다. 담배의 첫 경험은 철저히 타의적이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엄마는 내 방에 담배 있는지 몰라.

 어, 그것도 비밀이지. 모범생한테 담배 가르쳐 놓은 거 알면 기절하실라.



 후우. 보란듯이 공중으로 연기를 내뱉는 전원우 때문에 방에 뿌연 연기가 가득 들어찼다.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는 기침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밖을 보고 그나마 깨끗한 공기를 찾으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진짜 지랄. 뒤에서 비아냥대는 목소리는 여전히 재수 없었다. 책상 위에 반쯤 남아 있던 캔콜라를 들어 입구에 재를 턴 전원우가 이내 반도 피우지 않은 담배를 그대로 안에 빠뜨린 뒤 침대에 걸터 앉았다. 



 민규야.

 왜.

 너 왜 이렇게 좋냐.



 섹스할 때도 강압적인 말들만 늘어놓는 전원우는 꼭 다 끝나고 난 뒤에나 헛소리를 지껄이곤 했다. 익숙한 레퍼토리에 별수 없이 웃었다. 손가락으로 볼을 툭툭 쳐 오는 손길이 그다지 기분 나쁘지가 않다.



 우리 그냥 나가서 살까 봐.

 현실적인 소리를 해, 병신아.



 말은 그렇게 뱉어 놓고 머릿속으로는 둘이 집 얻어 사는 장면을 그리는 꼴이라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형 전원우를 닮은 부분인 것 같기도 했다. 가끔 전원우는 우리가 왜 형제여야 하냐며 관계성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했는데, 나는 아무런 의사 표현 없이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만 계속했다. 어차피 정의 내리기는 진작 포기했기 때문이다. 



 좆같게도 철저한 양방성을 띄는 우리의 사랑은 머저리들끼리 삽질하는 짓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럴 거면 생판 남으로 만나게 해 주지. 믿지 않는 신을 원망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실은 그대로였다. 이복형제인 전원우와 김민규. 말라빠진 전원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볍게 터지는 웃음 소리를 들으며 등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모든 것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멘션 온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형은~>, <엄마한텐 비밀이다> 좋은 문장 제시해 주신 청재 님과 에몽 님께 뽀뽀와 사랑을 드립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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