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밍전력 <커플템>
권순영 김민규
썸머
"나 반지 잃어버렸어."
빨대로 반도 남지 않은 아이스라떼를 한 모금 쭉 빨아들인 민규가 담담하게 툭 말을 던졌다. 마주앉은 순영은 그런 민규를 몇 초간 응시하다 이내 입도 가져다대지 않아 새것인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손에 들어 좌우로 두어 번 흔들기만 했다. 민규도 같이 순영을 바라보다 차가운 시선에 압도되었는지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말았고, 버릇처럼 입에 문 빨대를 질겅질겅 씹었다. 순영은 이제 이 상황이 조금 지겹기 시작했다.
어쩌면 2년이라는 시간은 순영과 민규에게 짧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영을 만날 적 미성년자 신분이었던 민규에게는 모든 것에 있어서 순영이 처음이었다. 영화관에 나란히 앉아 간지럽게 손끝을 스쳤던 덕분에 스크린에 집중하지 못한 것과, 입시 때문에 매번 열 시를 찍고서 끝이 난 야간 자율 학습에도 언제나 교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려 주며 손잡고 하교한 것, 수업을 쨌을 시 대피용으로만 여겼던 옥상에서 저물어가는 석양과 함께 맞물린 첫키스, 자신의 침대에 처음 남자 냄새를 묻힌 것까지 모두. 민규는 휴대 전화 배경화면에 있는 디데이 애플리케이션의 숫자를 보고 생각했다. 아, 이제 내가 익숙해질 때가 됐구나. 사실 민규는 어느 시점이라고 정확히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어디부터 잘못된 거지. 이제는 영화 관람이 목적인 약속도 삼십 분 전에 깨기 마련이고, 대학생 신분으로서 술자리는 빠지면 안 된다는 핑계로 같이 귀가하지도 않으며, 민규가 질색하는 담배 냄새 섞인 키스의 빈도가 높았고, 또 침대 위에서 말 없는 섹스가 관계의 대부분이었다. 민규는 자신의 앞에서 휴대 전화를 만지고 있는 순영을 바라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을 마주보고 있을 바에는 자리를 떠야겠다, 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형."
"반지 새로 맞춰서 가져다줄게. 오늘은 일찍 들어가라."
먼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순영을 보며 민규는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남은 건 옅은 담배 냄새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 전부였다. 민규는 그 자리에서 몇 번 눈을 깜빡이다 이내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바닥을 보인 자신의 음료와 새것 수준인 순영의 음료를 집어 들어 카운터에 반납했다. 감사합니다, 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친절한 인사에 평소 같았으면 입꼬리를 올려 웃었을 민규이지만 오늘은 그저 집에 가 눕고 싶었다. 재빠르게 택시에 올라탄 민규는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민규는 그나마 자신의 기분과 대조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깜깜한 자신의 방을 밝히기 위해 스위치에 먼저 손을 가져다댄 후 불을 켰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곧바로 침대에 누웠지만 시야에 비치는 형광등이 오늘따라 눈부셨고, 괜히 짜증이 나 다시 불을 끄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민규는 스위치를 끄려는 행위 전에 먼저 책상 앞에 멈춰 서고, 조그마한 삼단 서랍 중 마지막 칸을 열어 주머니에 있던 반지를 꺼내 한 귀퉁이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무의식적으로 숫자를 센 민규의 입에서 하아, 하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핑계로라도 순영과 같이 있으려고 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게 다섯 번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의 방울 수는 점차 늘어만 갔으며 그저 민규는, 이 상황에서도 순영이 보고 싶었다.
'Summ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민] 키리에 (0) | 2016.08.27 |
---|---|
[원민] ♨♨ (0) | 2016.08.19 |
[원민] 공전 (0) | 2016.08.19 |
[순밍] 바람+허벅지 (0) | 2016.08.19 |
[순밍] Plan A (0) | 2016.08.19 |